[EHD 시즌 3]: "불의 전도!"
#5. 디베랴의 모닥불이 다시 일으키다 (요한복음 21:1-19)
- 서론: 영적 침체의 비밀
기도의 불꽃이 꺼진 자리에서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처럼 놀라운 응답을 경험해도, 우리는 쉽게 두려움과 낙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도의 기적을 체험한 엘리야조차,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는 기도하지 못한 채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청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입니다. 왜 응답을 받고도 낙심할까요?
불이 꺼진 자리에 다시 오시는 주님 영적 침체는 종종 은혜의 체험 이후 찾아옵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지칠 때를 틈타 공격하며, 하나님은 감정이 아닌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도록 때로 침묵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의 '응답'에 집중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놓치기도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도를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로, 우리의 존재를 다시 일으키는 자리입니다.
- 본문 주석: 디베랴의 모닥불
회복을 준비하신 은혜의 자리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옛 삶으로 돌아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그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순종하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이 숫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풍성한 열매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이시다!”라고 외치고,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리고 육지에 도착하자 그의 눈앞에는 ‘숯불’이 놓여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밤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지만, 이번에는 주님이 친히 떡과 물고기를 준비하신 ‘회복의 자리’입니다. 떡은 만나, 곧 말씀을 상징하고, 물고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용한 ‘익투스(ἰχθύς)’—“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고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모닥불 앞에서 주님은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베드로의 부인을 덮고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 결론 및 적용: 모닥불 앞에서 다시 불붙게 하소서!
우리 역시 처음에는 열정으로 가득 찼지만, 전도의 현실 앞에 열정이 식고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진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진짜 기도는 ‘하나님 없이는 한 걸음도 못 갑니다’라는 깊은 겸손의 몸짓입니다. 기도란, 다시 은혜만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일을 이루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앞에 모닥불을 피우시고, 떡과 물고기를 준비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자.”고 부르시며, 우리의 실패와 상처를 은혜로 덮고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꺼져가는 심령도, 무너진 믿음도, 다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 불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다시 기도하십시오. 감정이 없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다시 세우시고,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다시 사명을 맡기실 것입니다.
[EHD 시즌 3]: "불의 전도!"
#5. 디베랴의 모닥불이 다시 일으키다 (요한복음 21:1-19)
기도의 불꽃이 꺼진 자리에서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처럼 놀라운 응답을 경험해도, 우리는 쉽게 두려움과 낙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도의 기적을 체험한 엘리야조차,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는 기도하지 못한 채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청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입니다. 왜 응답을 받고도 낙심할까요?
불이 꺼진 자리에 다시 오시는 주님 영적 침체는 종종 은혜의 체험 이후 찾아옵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지칠 때를 틈타 공격하며, 하나님은 감정이 아닌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도록 때로 침묵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의 '응답'에 집중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놓치기도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도를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로, 우리의 존재를 다시 일으키는 자리입니다.
회복을 준비하신 은혜의 자리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옛 삶으로 돌아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그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순종하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이 숫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풍성한 열매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이시다!”라고 외치고,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리고 육지에 도착하자 그의 눈앞에는 ‘숯불’이 놓여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밤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지만, 이번에는 주님이 친히 떡과 물고기를 준비하신 ‘회복의 자리’입니다. 떡은 만나, 곧 말씀을 상징하고, 물고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용한 ‘익투스(ἰχθύς)’—“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고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모닥불 앞에서 주님은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베드로의 부인을 덮고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우리 역시 처음에는 열정으로 가득 찼지만, 전도의 현실 앞에 열정이 식고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진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진짜 기도는 ‘하나님 없이는 한 걸음도 못 갑니다’라는 깊은 겸손의 몸짓입니다. 기도란, 다시 은혜만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일을 이루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앞에 모닥불을 피우시고, 떡과 물고기를 준비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자.”고 부르시며, 우리의 실패와 상처를 은혜로 덮고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꺼져가는 심령도, 무너진 믿음도, 다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 불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다시 기도하십시오. 감정이 없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다시 세우시고,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다시 사명을 맡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