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올해 창립 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작은 원룸에서 시작된 성경공부 모임을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오늘 이렇게 성전을 봉헌하고 예배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7”은 하나님의 완전성과 더불어 안식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규정을 개인의 하루를 넘어 공동체의 시간으로 확장하셔서, 안식년을 주시고(레 25장 앞부분), 그 안식년을 일곱 번 지킨 뒤 오는 50년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라 하십니다(레 25:8-13). 희년은 토지와 사람과 관계가 본래 자리로 회복되는 해, ‘자유’가 선포되는 해입니다.
안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창조를 완성하시며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창 2:2-3). 랍비들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이 이 날에 ‘메누하’(충만한 쉼, 평화, 행복)를 창조하셨다고 묵상했습니다. 아브라함 헤쎌은 안식일을 ‘시간 속의 궁전’이라 불렀는데, 이는 안식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맛보게 하는 거룩한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해 이 복을 잃어버렸고, 쉼 대신 불안과 경쟁과 정죄 속에 살아왔습니다. 죄를 조장한 ‘악’은 톰 라이트가 말하듯 악(evil)은 반(反)창조, 반생명의 세력으로서 하나님의 선한 세계를 파괴하려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아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이 육체와 마음의 회복 뿐 아니라, 영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까지 포함함을 드러냅니다.
그 절정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신 ‘대속(atonement)’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셨고, 동시에 악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총출동한 십자가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타인을 위한 희생의 사랑으로 악을 무력화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투스 빅토르(승리자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죄와 악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레위기 25장의 희년 규례는 이 복음을 삶으로 그려냅니다. 속죄일의 나팔과 함께 전국에 자유가 선포되고(레 25:9-10), 억눌렸던 자들이 본래의 자리와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또한 희년의 삶은 “축적과 탐심”을 멈추고(25:11),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며 필요한 만큼 받고 함께 나누는 거룩한 삶으로 나타납니다(25:12). 결국 희년은 하나님께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손을 펴는 회복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맞이하는 첫 안식년에 할 일은, 십자가 복음으로 주어진 자유를 삶을 통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말보다 삶으로—용서하고, 나누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억눌린 이들을 자유케하고 회복시키는 선택으로—우리의 한 해를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올 한 해가 우리 인생의 “첫 안식년”이 되어,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큰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창립 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작은 원룸에서 시작된 성경공부 모임을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오늘 이렇게 성전을 봉헌하고 예배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7”은 하나님의 완전성과 더불어 안식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규정을 개인의 하루를 넘어 공동체의 시간으로 확장하셔서, 안식년을 주시고(레 25장 앞부분), 그 안식년을 일곱 번 지킨 뒤 오는 50년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라 하십니다(레 25:8-13). 희년은 토지와 사람과 관계가 본래 자리로 회복되는 해, ‘자유’가 선포되는 해입니다.
안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창조를 완성하시며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창 2:2-3). 랍비들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이 이 날에 ‘메누하’(충만한 쉼, 평화, 행복)를 창조하셨다고 묵상했습니다. 아브라함 헤쎌은 안식일을 ‘시간 속의 궁전’이라 불렀는데, 이는 안식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맛보게 하는 거룩한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해 이 복을 잃어버렸고, 쉼 대신 불안과 경쟁과 정죄 속에 살아왔습니다. 죄를 조장한 ‘악’은 톰 라이트가 말하듯 악(evil)은 반(反)창조, 반생명의 세력으로서 하나님의 선한 세계를 파괴하려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아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이 육체와 마음의 회복 뿐 아니라, 영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까지 포함함을 드러냅니다.
그 절정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신 ‘대속(atonement)’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셨고, 동시에 악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총출동한 십자가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타인을 위한 희생의 사랑으로 악을 무력화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투스 빅토르(승리자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죄와 악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레위기 25장의 희년 규례는 이 복음을 삶으로 그려냅니다. 속죄일의 나팔과 함께 전국에 자유가 선포되고(레 25:9-10), 억눌렸던 자들이 본래의 자리와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또한 희년의 삶은 “축적과 탐심”을 멈추고(25:11),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며 필요한 만큼 받고 함께 나누는 거룩한 삶으로 나타납니다(25:12). 결국 희년은 하나님께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손을 펴는 회복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맞이하는 첫 안식년에 할 일은, 십자가 복음으로 주어진 자유를 삶을 통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말보다 삶으로—용서하고, 나누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억눌린 이들을 자유케하고 회복시키는 선택으로—우리의 한 해를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올 한 해가 우리 인생의 “첫 안식년”이 되어,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큰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