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풀어낸 장입니다. 씨뿌리는 자와 좋은 땅으로 시작해, 가라지의 혼란을 지나, 겨자씨와 누룩의 성장과 변화로 이어지고, 보화·진주·그물 비유로 그 핵심이 다시 모아지듯 정리됩니다. 보화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두고 “양자택일”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진주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쁨과 적극성, 우선순위의 재배치를 요구합니다. 그물은 인내와 관용과 평화의 시간 속에서도 결국 최후의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신뢰하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새것과 옛것” 비유는 이 모든 비유들을 한 문장으로 묶어 마태복음 13장의 결론처럼 울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13:16). 그리고 52절에서 예수님은 그 깨달은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로 부르십니다. 서기관은 원래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며 가르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역할을-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천국의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새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옛것은 구약의 율법과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옛것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러 오셨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성취하시는 분입니다(마 5:17-18). 동시에 그 율법이 결국 예수님 자신을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요 5:39).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제자된 서기관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율법의 본질—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게 하고, 구약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언약의 완전성을 사람들에게 밝혀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은 말씀을 많이 아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 말씀을 꺼내어 다른 이들을 먹이고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을 비유로 드십니다. 추수 후 곳간에는 새 곡식도 들어오고 묵은 곡식도 남습니다. 지혜로운 집주인은 한쪽만 붙들지 않습니다. 새것만 취하면 옛것은 방치되어 썩고, 옛것만 고집하면 새것도 때를 놓칩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둘을 함께 꺼내어 적절하게 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새것(복음, 예수의 통치, 성령의 역사)을 품고, 옛것(말씀, 언약, 전통, 하나님의 방식)도 함께 붙들며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예수로 읽고, 예수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성숙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변하지 않는 예수 사랑과 진리로 변화하는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격려의 신앙 공동체”라는 우리 교회 모토가 바로 이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론 뒤에 곧바로 “나사렛에서 배척당한 예수님” 이야기가 나옵니다(13:53-58). 새것을 꺼낼 때, 낡은 익숙함이 예수님을 밀어낼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바로 우리가 겪는 현실 역시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서기관 된 제자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새것과 옛것을 나누어 주고 먹여 줄 수 있는 말씀의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정렬합시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마음의 변화를 받고, 그 말씀을 삶의 순종으로 전하는 공동체가 됩시다.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풀어낸 장입니다. 씨뿌리는 자와 좋은 땅으로 시작해, 가라지의 혼란을 지나, 겨자씨와 누룩의 성장과 변화로 이어지고, 보화·진주·그물 비유로 그 핵심이 다시 모아지듯 정리됩니다. 보화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두고 “양자택일”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진주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쁨과 적극성, 우선순위의 재배치를 요구합니다. 그물은 인내와 관용과 평화의 시간 속에서도 결국 최후의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신뢰하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새것과 옛것” 비유는 이 모든 비유들을 한 문장으로 묶어 마태복음 13장의 결론처럼 울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13:16). 그리고 52절에서 예수님은 그 깨달은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로 부르십니다. 서기관은 원래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며 가르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역할을-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천국의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새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옛것은 구약의 율법과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옛것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러 오셨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성취하시는 분입니다(마 5:17-18). 동시에 그 율법이 결국 예수님 자신을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요 5:39).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제자된 서기관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율법의 본질—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게 하고, 구약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언약의 완전성을 사람들에게 밝혀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은 말씀을 많이 아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 말씀을 꺼내어 다른 이들을 먹이고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을 비유로 드십니다. 추수 후 곳간에는 새 곡식도 들어오고 묵은 곡식도 남습니다. 지혜로운 집주인은 한쪽만 붙들지 않습니다. 새것만 취하면 옛것은 방치되어 썩고, 옛것만 고집하면 새것도 때를 놓칩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둘을 함께 꺼내어 적절하게 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새것(복음, 예수의 통치, 성령의 역사)을 품고, 옛것(말씀, 언약, 전통, 하나님의 방식)도 함께 붙들며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예수로 읽고, 예수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성숙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변하지 않는 예수 사랑과 진리로 변화하는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격려의 신앙 공동체”라는 우리 교회 모토가 바로 이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론 뒤에 곧바로 “나사렛에서 배척당한 예수님” 이야기가 나옵니다(13:53-58). 새것을 꺼낼 때, 낡은 익숙함이 예수님을 밀어낼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바로 우리가 겪는 현실 역시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서기관 된 제자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새것과 옛것을 나누어 주고 먹여 줄 수 있는 말씀의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정렬합시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마음의 변화를 받고, 그 말씀을 삶의 순종으로 전하는 공동체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