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그리스도의 믿음(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그리스도의 소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지난 시리즈를 통해 되돌아보면, 십자가 복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결국 믿음·소망·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지금 신뢰하는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이며, 사랑은 그 하나님을 닮아 살아내는 삶의 완성입니다. 그중, 소망이 흔들리면 믿음은 지쳐 방향을 잃고, 사랑은 식거나 자기 욕망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빌 2:5–1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품으라 말합니다. 이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신 ‘겸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전체의 흐름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헤아려 본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믿음을 지키는 마음인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 앞에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라 고백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높이심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소망—영광이라는 “뒤집힘의 패턴”은 유대전승으로부터 이어져 구약 전반에 흐르던 하나님 구원의 방식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구약 핵심 이야기들의 주제들, 즉, 고난-소망, 낮아짐-높아짐, 그리고 죽음-부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로마서 8장에서는 이러한 고난과 소망의 상관관계를 더 분명히 밝혀 줍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는데, 여기서 바울이 쓰는 접속어는 헬라어 에이페르 εἴπερ(eiper)입니다. 흔히 “만일”로 번역되지만, 의미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다면/정말로 그 조건이 충족된다면”에 가깝습니다. 즉 바울이 말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에 마땅히 따라오는 현실이며, 그 현실은 곧 영광으로 가는 길의 표지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인생에 환난도 오고, 곤고도 오고, 박해도 오고, 가난과 위험과 두려움도 찾아오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롬 8:35–39).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고난 중에서 품는 소망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린 확신을 우리에게 깊이 새겨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소망을 품었던 바울은 옥중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지금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바울의 소망은 자기 삶의 결과가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진정한 모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공동체를 향한 사랑으로 더 구체화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빌 2:17). 바울에게 교회는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붓는 제단이었습니다.
그의 이 애끓는 마음이 우리의 고백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는 우리 지체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환호하는 거리(종려주일)에 멈추어 서있지 않고, 예수께서 이미 선택하신 그 수난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며,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을 바라보는 교회— 빌 2:6–11의 살아 있는 주석이 되는 교회,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갈 6:17)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빌 2:5) 교회가 됩시다. 소망을 품고, 더욱 더욱 주 예수를 따르는 그분의 몸이 됩시다.
지난주 “그리스도의 믿음(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그리스도의 소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지난 시리즈를 통해 되돌아보면, 십자가 복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결국 믿음·소망·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지금 신뢰하는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이며, 사랑은 그 하나님을 닮아 살아내는 삶의 완성입니다. 그중, 소망이 흔들리면 믿음은 지쳐 방향을 잃고, 사랑은 식거나 자기 욕망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빌 2:5–1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품으라 말합니다. 이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신 ‘겸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전체의 흐름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헤아려 본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믿음을 지키는 마음인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 앞에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라 고백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높이심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소망—영광이라는 “뒤집힘의 패턴”은 유대전승으로부터 이어져 구약 전반에 흐르던 하나님 구원의 방식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구약 핵심 이야기들의 주제들, 즉, 고난-소망, 낮아짐-높아짐, 그리고 죽음-부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로마서 8장에서는 이러한 고난과 소망의 상관관계를 더 분명히 밝혀 줍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는데, 여기서 바울이 쓰는 접속어는 헬라어 에이페르 εἴπερ(eiper)입니다. 흔히 “만일”로 번역되지만, 의미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다면/정말로 그 조건이 충족된다면”에 가깝습니다. 즉 바울이 말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에 마땅히 따라오는 현실이며, 그 현실은 곧 영광으로 가는 길의 표지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인생에 환난도 오고, 곤고도 오고, 박해도 오고, 가난과 위험과 두려움도 찾아오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롬 8:35–39).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고난 중에서 품는 소망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린 확신을 우리에게 깊이 새겨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소망을 품었던 바울은 옥중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지금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바울의 소망은 자기 삶의 결과가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진정한 모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공동체를 향한 사랑으로 더 구체화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빌 2:17). 바울에게 교회는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붓는 제단이었습니다.
그의 이 애끓는 마음이 우리의 고백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는 우리 지체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환호하는 거리(종려주일)에 멈추어 서있지 않고, 예수께서 이미 선택하신 그 수난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며,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을 바라보는 교회— 빌 2:6–11의 살아 있는 주석이 되는 교회,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갈 6:17)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빌 2:5) 교회가 됩시다. 소망을 품고, 더욱 더욱 주 예수를 따르는 그분의 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