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살아내는 십자가 복음"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 (갈라디아서 2:20)

  바울은 갈 2:20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된다고 말입니다. 또 바울은 이어지는 장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말하며, 사랑과 믿음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냅니다. 결국 사랑은 믿음의 열매이며, 믿음은 사랑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갈 2:20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은 헬라어로 πίστις Χριστοῦ, 즉 크리스투(그리스도)가 속격으로 되어 있어, 피스티스(믿음)는 문법상 두 가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목적격),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하심”(주격)입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믿음의 무게중심이 ‘내 결단’에 놓이느냐,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놓이느냐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칭의를 말할 때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 문구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읽을 때,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사랑의 삶으로 이끄는 근원은 궁극적으로 “내가 만들어내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믿음”임을 더 선명히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아버지를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언약을 끝까지 붙드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헬라어 pistis(믿음)는 ‘신념’(belief)만이 아니라 ‘신실함’(faithfulness)의 뜻도 지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사랑의 자리이면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결국 그리스도의 믿음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내 믿음’으로 버티려 하기에 쉽게 지치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하며,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롬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