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the Gospel" #14 정의의 복음(7): 케노시스(κένωσις)의 경제 (고린도후서 8:1–15, 9:6–15)

  케노시스 κένωσις는 ‘비우다, 자신을 낮추다’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비우신 길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빌 2:6–8). 고로, 오늘 말씀의 제목인 ‘케노시스의 경제’란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자기 낮춤을 본받아 우리의 돈과 소유를 대하는 삶의 질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에 받은 것을 움켜쥐지 않고, 다른 이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흘려 보낼 수 있는 ‘연보’에 관하여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권하며, 먼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며, 오히려 이 은혜의 일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고후 8:1–4). 어떻게 극심한 가난 속에서 이러한 나눔이 가능했을까요? 그 출발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카리스, χάρις - 은혜, 자선, 관대, 관대한 행동, 감사 라는 뜻의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의 카리스를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은혜를 흘려보냈습니다. 마이클 고먼은 이 연보를 ‘은혜롭고 참여적인 경제적 정의’라고 표현합니다. 헌금은 교회에 회비를 지불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리며 내 삶이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예배입니다(고후 8:5).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 8:9). 바로 이 말씀에 케노시스κένωσις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납니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즉- 테오시스 θέωσις 적인 결단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헌금은 내 것을 빼앗기는 일도 아니고, 하나님의 인정을 얻기 위한 실적도 아닙니다. 내가 오직 주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그 은혜의 통로가 되고자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에 기쁘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억지로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며, 각자의 형편에 맞게 기쁜 마음으로 드리라 하셨습니다(고후 8:12).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기쁘게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고후 9:7).

  이러한 케노시스는 사람들 사이에 평형- 즉, 공평과 균등(이소테스 ἰσότης)을 이룹니다. 넉넉한 사람의 소유가 부족한 사람에게 흘러가 아무도 결핍 속에 버려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고후 8:13–14).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었을 때에도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했습니다(출 16:18; 고후 8:15).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 만나를 쌓아두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출 16:19–20). 나에게만 고여 있으면 썩어가는 잉여물이 되지만, 누군가의 결핍으로 흘러가면 그에게는 카리스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케노시스적 경제의 흐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그 씨를 여러 갑절로 늘려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하십니다(고후 9:10). 이것은 더 많이 드리면 더 많은 물질로 보상받는다는 거래의 공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셔서 온갖 선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고후 9:8). 본문에서 바울이 인용한 시편은, 가난한 사람에게 재물을 흩어 나누는 일을 ‘의’(체다카)라고 부릅니다(시 112:9; 고후 9:9). 헌금과 구제라는 의로운 씨앗을 통해 성도들의 궁핍이 채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영광이 일어나며, 서로를 위한 사랑과 기도가 이어집니다(고후 9:12–14).

  이 은혜의 질서 안에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완전히 나뉘지 않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고, 모두가 은혜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소유를 통해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를 드러냅시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쁨으로 흘려보내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고, 주님의 카리스가 이 땅의 결핍을 채우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