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고린도 교회 안에 나타난 세 가지 아디키아(ἀδικία), 곧 불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소송은 형제를 심판하고 화해를 거부한 불의였고, 지식은 자기 권리와 자유를 앞세워 약한 자를 걸려 넘어지게 한 불의였습니다. 또한 성찬의 파괴는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면서도 약한 자를 부끄럽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찢는 불의였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유익을 앞세우고 연약한 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언제나 약한 자를 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자를 회복하시고, 죄인과 연약한 자를 구원하시는 사랑과 긍휼로 자신의 정의를 이루십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하나님의 정의가 이제 교회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15절). 이것이 초대교회가 말한 테오시스(Theosis, θέωσις), 곧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품에 참여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새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전보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 방식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화해의 직분을 맡기셨다고 말합니다(18-20절). 예수님께서는 죄를 따지지 않으시고 먼저 사랑하시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절로서, 그 화해를 세상 가운데 이어 가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본문의 절정에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셨고, 이제 교회는 그 길을 이어 가도록 초청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단지 문제 해결이나 축복을 구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긍휼을 신뢰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 주께 있네”라는 고백처럼, 우리의 믿음은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정의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교회,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 교회가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고린도 교회 안에 나타난 세 가지 아디키아(ἀδικία), 곧 불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소송은 형제를 심판하고 화해를 거부한 불의였고, 지식은 자기 권리와 자유를 앞세워 약한 자를 걸려 넘어지게 한 불의였습니다. 또한 성찬의 파괴는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면서도 약한 자를 부끄럽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찢는 불의였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유익을 앞세우고 연약한 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언제나 약한 자를 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자를 회복하시고, 죄인과 연약한 자를 구원하시는 사랑과 긍휼로 자신의 정의를 이루십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하나님의 정의가 이제 교회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15절). 이것이 초대교회가 말한 테오시스(Theosis, θέωσις), 곧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품에 참여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새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전보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 방식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화해의 직분을 맡기셨다고 말합니다(18-20절). 예수님께서는 죄를 따지지 않으시고 먼저 사랑하시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절로서, 그 화해를 세상 가운데 이어 가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본문의 절정에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셨고, 이제 교회는 그 길을 이어 가도록 초청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단지 문제 해결이나 축복을 구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긍휼을 신뢰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 주께 있네”라는 고백처럼, 우리의 믿음은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정의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교회,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 교회가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