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는 성찬을 행하고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의 예배를 향해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20절)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성찬의 자리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나뉘어, 먼저 온 부유한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 성찬에 참여한 반면, 늦게 온 가난한 성도들은 굶주린 채 부끄러움을 당하며 성찬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21-22절). 그들은 성찬을 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멸시하는 불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성찬의 본래 의미를 다시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서 떡과 잔을 들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24-25절)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참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는 의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분의 십자가와 하나 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26절)인 성찬은,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동시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완성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의 예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합당한 자세를 말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28절). 성찬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부인(Self-denial)의 길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이어 “몸을 분별하라”(29절)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분별하라는 뜻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인 동시에, 그분의 몸 된 공동체와 하나 되는 길입니다. C. S. Lewis는 “당신이 감지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성찬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이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찬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성도 안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서로 기다리십시오”(33절)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ἐκδέχεσθε, 에크데케스데)는 서로를 고대하며 배려하고 또한 환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찬의 마지막 결론은 복잡한 신학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품어 주는 하나됨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셨듯이, 우리도 연약한 지체를 기다리고 세워 가야 합니다.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십자가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정의를 기억하고, 그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며,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찬을 행하고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의 예배를 향해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20절)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성찬의 자리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나뉘어, 먼저 온 부유한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마신 후 성찬에 참여한 반면, 늦게 온 가난한 성도들은 굶주린 채 부끄러움을 당하며 성찬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21-22절). 그들은 성찬을 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멸시하는 불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성찬의 본래 의미를 다시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서 떡과 잔을 들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24-25절)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참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는 의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분의 십자가와 하나 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26절)인 성찬은,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동시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완성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의 예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합당한 자세를 말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28절). 성찬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부인(Self-denial)의 길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이어 “몸을 분별하라”(29절)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분별하라는 뜻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인 동시에, 그분의 몸 된 공동체와 하나 되는 길입니다. C. S. Lewis는 “당신이 감지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성찬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이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찬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성도 안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서로 기다리십시오”(33절)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ἐκδέχεσθε, 에크데케스데)는 서로를 고대하며 배려하고 또한 환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찬의 마지막 결론은 복잡한 신학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품어 주는 하나됨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셨듯이, 우리도 연약한 지체를 기다리고 세워 가야 합니다.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십자가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정의를 기억하고, 그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며,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