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제국은 강력한 힘으로 질서를 세우며 그것을 팍스 로마나(Pax Romana), 곧 평화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억압과 통제 위에 세워진, 피상적이고 위선적인 평화였습니다. 만일 그러한 방식이 참된 평화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시며, 희생과 섬김으로 화해를 이루시고 참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클라우스 벵스트(Klaus Wengst)의 말처럼, 초대교회는, 폭력적인 제국 한가운데서 ‘폭력이 중단된 영역’이었습니다. 로마는 칼로 평화를 만들었지만, 교회는 십자가로 이루어진 평화를 살아내는 공동체였습니다. 히브리어 말쿠트(מַלְכוּת)와 헬라어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가 보여주듯,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현실이며, 교회는 바로 그 통치가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은 자들로서, 교회 안에서 먼저 그 평화를 살아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이를 위해 네 가지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 곧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마음, 온유(πραΰτης), 곧 힘이 있지만 사랑으로 절제하는 태도,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 곧 서로를 견디며 관계를 지속하는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용납(ἀνεχόμενοι ἐν ἀγάπῃ), 곧 판단하기 전에 먼저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품이 아니라, 관계안에 진정한 평화를 도모하는 그리스도의 통치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평화의 띠로 그의 부르심을 입은 교회 공동체를 이미 한 몸으로 묶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이 하나 됨은 완성된 은혜이며, 교회는 바로 그 은혜 위에 세워진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이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고, 힘써 지켜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시고(엡 4:11), 그 은사를 따라 섬기게 하심으로,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워 가십니다(4:12-13). 즉,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통로이며, 그리스도의 충만함, 곧 참된 평화(샬롬)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이 말하는 평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물질과 성공, 안정과 성취가 주는 일시적인 평안을 붙잡으며, 그것이 참된 평화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를 향해 분명히 경고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속임수와 간교한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아이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엡 4:14).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다른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분명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서로 연결되어 각 지체가 맡은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로서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4:15-16). 그렇게 할 때에만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참된 평화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성령의 평화의 띠로 묶인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이 하나 됨을 힘써 지키며,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참된 평화 공동체로 살아갑시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제국은 강력한 힘으로 질서를 세우며 그것을 팍스 로마나(Pax Romana), 곧 평화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억압과 통제 위에 세워진, 피상적이고 위선적인 평화였습니다. 만일 그러한 방식이 참된 평화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시며, 희생과 섬김으로 화해를 이루시고 참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클라우스 벵스트(Klaus Wengst)의 말처럼, 초대교회는, 폭력적인 제국 한가운데서 ‘폭력이 중단된 영역’이었습니다. 로마는 칼로 평화를 만들었지만, 교회는 십자가로 이루어진 평화를 살아내는 공동체였습니다. 히브리어 말쿠트(מַלְכוּת)와 헬라어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가 보여주듯,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현실이며, 교회는 바로 그 통치가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은 자들로서, 교회 안에서 먼저 그 평화를 살아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이를 위해 네 가지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 곧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마음, 온유(πραΰτης), 곧 힘이 있지만 사랑으로 절제하는 태도,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 곧 서로를 견디며 관계를 지속하는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용납(ἀνεχόμενοι ἐν ἀγάπῃ), 곧 판단하기 전에 먼저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품이 아니라, 관계안에 진정한 평화를 도모하는 그리스도의 통치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평화의 띠로 그의 부르심을 입은 교회 공동체를 이미 한 몸으로 묶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이 하나 됨은 완성된 은혜이며, 교회는 바로 그 은혜 위에 세워진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이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고, 힘써 지켜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시고(엡 4:11), 그 은사를 따라 섬기게 하심으로,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워 가십니다(4:12-13). 즉,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통로이며, 그리스도의 충만함, 곧 참된 평화(샬롬)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이 말하는 평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물질과 성공, 안정과 성취가 주는 일시적인 평안을 붙잡으며, 그것이 참된 평화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를 향해 분명히 경고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속임수와 간교한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아이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엡 4:14).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다른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분명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서로 연결되어 각 지체가 맡은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로서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4:15-16). 그렇게 할 때에만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참된 평화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성령의 평화의 띠로 묶인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이 하나 됨을 힘써 지키며,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참된 평화 공동체로 살아갑시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