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고, 이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문자에 얽매인 낡은 방식(율법)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롬 7:4–6). 지난주 우리가 새생명을 받은 은혜를 나눴다면, 오늘은 그 새생명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바울의 답은 “성령이 주시는 새로움” (καινότης πνεύματος카이노테스 프뉴마토스)입니다.
율법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롬 7:12). 문제는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입니다. 바울에게 죄는 단순히 몇 가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을 붙들고 속이며 심지어 선한 계명까지 이용하여 사람을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끌고 가는 지배적인 권세처럼 묘사됩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 비추어 보여줄 수 있지만, 우리 안에 그 말씀을 살아낼 새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깊은 분열을 고백합니다. 선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지박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 뜻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교리까지도 정죄와 자기 의와 인정욕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우리를 말씀에서 멀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주인으로 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침내 바울은 절규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여기서 중요한 말은 “누가”입니다. 더 좋은 규칙도, 더 강한 의지도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은 새로운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롬 8:1–2). 율법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주셔서 새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8장 6–7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생각”과 “성령에 속한 생각”을 대조합니다. 여기서 생각(φρόνημα 프로네마)는 단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보다 마음의 지향, 삶의 방향에 가깝습니다. 고로, 앞서 말한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이란, 우리 삶에서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누구를 주인으로 삼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지난 주 함께 읽었던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새생명)에 대해 말씀하신 직후, 이같이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 3:8). 성령(πνεῦμα 프뉴마)은 ‘영’이면서 ‘바람’, ‘숨’을 뜻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움직임으로 알 수 있듯, 성령의 역사도 우리의 삶의 지향이 달라지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사람이 죄를 아파하고, 자기만 보던 사람이 다른 이를 보기 시작하며, 자기 뜻만 붙들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그분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롬 8:11)이라는 말씀은, 미래에 우리를 완전히 살리실 바로 그 주님의 영- 성령께서, 이미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내 안에 주님의 주권을 세워 주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의지를 성령께 맡기며, 영생에 이를 때까지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고, 이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문자에 얽매인 낡은 방식(율법)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롬 7:4–6). 지난주 우리가 새생명을 받은 은혜를 나눴다면, 오늘은 그 새생명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바울의 답은 “성령이 주시는 새로움” (καινότης πνεύματος카이노테스 프뉴마토스)입니다.
율법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롬 7:12). 문제는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입니다. 바울에게 죄는 단순히 몇 가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을 붙들고 속이며 심지어 선한 계명까지 이용하여 사람을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끌고 가는 지배적인 권세처럼 묘사됩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 비추어 보여줄 수 있지만, 우리 안에 그 말씀을 살아낼 새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깊은 분열을 고백합니다. 선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지박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 뜻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교리까지도 정죄와 자기 의와 인정욕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우리를 말씀에서 멀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주인으로 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침내 바울은 절규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여기서 중요한 말은 “누가”입니다. 더 좋은 규칙도, 더 강한 의지도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은 새로운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롬 8:1–2). 율법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주셔서 새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8장 6–7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생각”과 “성령에 속한 생각”을 대조합니다. 여기서 생각(φρόνημα 프로네마)는 단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보다 마음의 지향, 삶의 방향에 가깝습니다. 고로, 앞서 말한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이란, 우리 삶에서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누구를 주인으로 삼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지난 주 함께 읽었던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새생명)에 대해 말씀하신 직후, 이같이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 3:8). 성령(πνεῦμα 프뉴마)은 ‘영’이면서 ‘바람’, ‘숨’을 뜻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움직임으로 알 수 있듯, 성령의 역사도 우리의 삶의 지향이 달라지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사람이 죄를 아파하고, 자기만 보던 사람이 다른 이를 보기 시작하며, 자기 뜻만 붙들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그분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롬 8:11)이라는 말씀은, 미래에 우리를 완전히 살리실 바로 그 주님의 영- 성령께서, 이미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내 안에 주님의 주권을 세워 주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의지를 성령께 맡기며, 영생에 이를 때까지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